올해 봄, 제주 바람이 제법 쌀쌀할 때였다. 평소라면 혼자 떠날 법한 여행이었는데, 이번엔 집에 있는 네 살배기 털복숭이 녀석을 데려가기로 했다. 사실 처음엔 걱정이 앞섰다. 비행기만 타도 스트레스를 받을 텐데, 낯선 땅에서 괜찮을까 싶었다. 하지만 공항에 도착해 짐을 찾고, 렌트카 뒷좌석에 그를 태우자마자 창밖으로 코를 내밀고 바람을 맞는 모습을 보고 안심이 됐다. 그날 제주는 하늘이 유난히 높고 맑았다.
첫 올레길, 바람과 풀내음 사이로
우리가 처음 간 곳은 애월 근처의 올레길 14코스 일부였다. 해안선을 따라 난 길은 사람도 많지 않아 반려견과 걷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강아지는 처음 보는 돌담과 키 큰 억새 사이를 뛰어다니며 코를 땅에 대고 킁킁거렸다. 어떤 구간은 자갈길이라 발바닥이 아플까 봐 걱정했는데, 오히려 그는 신나서 내 발걸음보다 훨씬 빨리 앞서 나갔다. 중간에 작은 포구가 나와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바닷바람이 불어오자 강아지는 귀를 쫑긋 세우고 파도 소리에 집중했다. 그 모습이 너무 진지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주차는 애월읍 공영주차장을 이용했는데, 올레길 입구까지 도보 5분 거리라 편리했다. 다만 주차장이 협소해 주말에는 자리 잡기가 어려울 수 있으니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를 추천한다. 길 중간에 음수대가 있지만 반려견 전용은 아니라서, 물그릇과 물병은 꼭 챙겨야 한다. 나는 개인용 접이식 물그릇을 들고 다녔는데, 강아지가 목 마를 때마다 바로 꺼내줄 수 있어 좋았다.
돌담과 오름, 개의 호흡으로 걷는 시간
이튿날은 성산읍으로 이동해 올레길 1코스 일부와 가까운 오름을 함께 둘러봤다. 송악산 근처 길은 경사가 완만해 반려견과 함께 걷기에 부담이 없었다. 강아지는 돌담 틈새에 핀 들꽃 냄새를 맡느라 한참을 멈춰 서기도 하고, 갑자기 나비를 쫓아 달리기도 했다. 그렇게 느릿느릿 걷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반려견과 함께라면 속도가 아니라 순간순간의 감각이 여행의 전부가 된다는 걸 실감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오름 정상 근처에 계단이 많았다는 것이다. 강아지가 작은 편이라 몇 군데는 안아서 올라야 했다. 무릎이 약한 대형견이라면 더 힘들었을 테니, 오름 코스는 미리 경사와 계단 여부를 확인하는 게 좋다. 반면 해안가 올레길은 대부분 평탄해서 작은 개도 혼자서 잘 걸었다. 나는 그날 오후, 근처 카페에서 강아지와 함께 앉아 유자차를 마시며 제주 바다를 바라봤다. 강아지는 내 무릎 위에 턱을 얹고 눈을 감았다. 그 시간이 여행의 전부였다.

마지막 길, 발걸음이 머무는 곳
떠나기 전날, 우리는 함덕 서우봉 해변 근처 올레길을 걸었다. 해질녘이라 붉게 물든 하늘 아래, 강아지는 모래사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발자국이 찍힌 자국이 강아지 것과 내 것이 섞여 길게 늘어졌다. 문득, 이렇게 작은 생명과 함께 길을 걷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생각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이 순간만큼은 온전히 그와 함께 멈춰 서 있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강아지는 깊이 잠들었다. 냄새도, 바람도, 돌담도 모두 처음인 세상을 하루 종일 누볐으니 피곤할 만했다. 아마 꿈속에서도 제주 올레길을 걷고 있을 거다. 나는 다음 여행지를 벌써 궁리한다. 강아지와 함께할 수 있는 또 다른 길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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