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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오후가 되자 씻은 듯 걷혔다. 창밖으로 보이는 남도의 산들이 비에 젖어 더 짙푸르게 빛나던 날, 나는 반려견 둥이와 함께 전남 땅을 밟았다. 사실 이번 여행은 전라도 음식을 먹으러 가는 길에, 마침 잘 다녀왔다는 지인의 추천으로 전남 애견동반 펜션을 끊은 거였다.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막상 펜션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니, 둥이가 코를 땅에 대고 콧김을 쉬다가 갑자기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잔디밭이 넓게 펼쳐진 공간이라 그런지, 평소엔 좀처럼 보지 못하던 그 속도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마당이 곧 놀이터, 사람도 개도 느긋해지는 시간
동해안이나 수도권 근교와 달리, 남도의 펜션은 뭔가 다르다. 마치 할머니 댁 마당에 온 것처럼 푸근한 인상을 주는 곳이 많다. 우리가 묵은 곳도 예외는 아니어서, 방 앞에 바로 프라이빗한 잔디마당이 딸려 있었다. 덕분에 목줄을 채우지 않아도 됐고, 둥이는 내가 커피를 마시는 내내 마당 구석구석을 탐색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특히 바닥에 떨어진 동백꽃잎을 물고 와서 흔드는 모습은, 마치 어린 강아지가 처음 장난감을 가진 것처럼 순수해서 오래도록 눈에 담아두고 싶었다.

저녁이 되자 공기가 제법 차가워졌는데, 방 안에는 따뜻한 온수가 준비되어 있어서 둥이의 발을 닦아주기에 좋았다. 늘 여행지에서는 강아지가 어디서 뛰어놀지, 혹시 민폐가 되지 않을지 걱정하느라 정작 내가 쉬지 못했던 기억이 많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주차 공간도 넉넉했고, 펜션 곳곳에 반려견을 위한 배변 봉투와 전용 수건이 비치되어 있어서 놀랐다. 그 세심함에 마음까지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순천만을 지나, 해변을 따라 걷는 산책길
펜션에서 조금만 운전하면 순천만 국가정원이 나온다. 아쉽게도 정원 내부에는 반려견 출입이 제한되어 있어서, 우리는 근처에 있는 갯벌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그리고 멀리 보이는 갯벌 위를 휘젓는 새들의 모습이 평화로웠다. 둥이는 처음 보는 흙 냄새에 정신이 팔려 한참을 앞서가다가도, 내가 발걸음을 멈추면 돌아와 곁에 착 붙어 앉았다. 그런 모습이 어찌나 다정한지, 카메라에 꼭 담아두고 싶어 몇 번이고 셔터를 눌렀다.
해변가에 도착하자 바람이 제법 강하게 불었는데, 둥이는 오히려 바람을 안고 달리는 걸 좋아했다. 귀가 뒤로 휘날리고,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것 같았다. 늘 도시에서 줄에 묶여 걸었던 녀석이 이렇게 마음껏 달리는 걸 보니, 여행을 잘 왔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렇게 넓은 잔디와 바다를 모두 가진 곳은 흔치 않은데, 이번 여행을 계기로 전남 애견동반 펜션에 대한 나의 기준이 확실히 높아져버렸다. 이제는 아무 데나 가기보다는, 이런 넉넉한 마당을 가진 곳을 골라 다시 예약해야겠다 싶을 정도였다.

밤에는 이불 속에서, 아침에는 마당에서
여행의 묘미는 밤에 찾아오기도 한다. 둥이가 낮에 신나게 뛰어다닌 탓인지, 밤이 되자 패딩 점퍼를 베개 삼아 곯아떨어졌다. 그런 녀석을 보며 나도 깊은 숙면을 취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유리창 너머로 새벽 안개가 걷히는 남도의 풍경이 펼져져 있었다. 커피 한 잔을 들고 마당에 나가니, 둥이가 어느새 일어나 나란히 앉아 멀리 있는 산등성이를 바라보았다.
사실 여행지의 화려한 볼거리도 좋지만,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함께 앉아 있는 시간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법이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서로의 호흡을 맞추며 느긋하게 흐르는 오전이었다. 이번 전남 여행은 특별한 일정 없이, 다만 우리가 함께하는 속도로 느릿하게 흘러갔다.
다음에는 지인의 추천으로 또 다른 전남 애견동반 펜션을 알아봐야겠다. 아마도 남도의 또 다른 구석에는, 둥이가 좋아할 만한 감나무 밭이나 논길이 펼쳐진 곳이 있을 테니까. 그날을 기약하며, 우리 부부와 둥이는 천천히 서울로 가는 길을 나섰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유채꽃밭을 보며, 둥이가 창밖을 향해 조용히 꼬리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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