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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 집 봄이는 물을 무서워한다. 목욕만 시키려고 욕실 문만 열어도 거실 소파 밑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녀석이었다. 그런데 지난주, 강원도에서 내려온 친구가 보문호 사진을 보여주며 “여기 산책로가 진짜 넓고 좋던데?”라고 한마디 한 게 시작이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애가 물을 무서워하는데 호수라니.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 밤, 잠들기 전에 유난히 봄이의 잠든 얼굴이 오래 떠올랐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나는 이미 숙소 검색을 하고 있었다.
경주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순탄했다. 봄이는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에 코를 대고, 가끔은 하품을 하고, 또 가끔은 내 무릎 위에 턱을 얹고는 멍하니 길을 바라봤다. 그 무심한 듯한 뒷모습이 왠지 여행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도착해서 보문호의 산책로에 발을 디뎠을 때, 나는 조금 긴장했다. 호수 바람이 불어오면 봄이가 움츠러들까 봐. 그런데, 아니었다. 봄이는 콧김을 쎄게 내뿜으며 바닥의 낙엽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호숫가 잔디밭에서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물가에서 두세 걸음 떨어진 곳에서 잠시 멈춰 서서, 호수 표면에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는 모습은 어쩌면 이 녀석이 처음으로 ‘풍경’을 구경하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낙엽 위를 걷는 발소리
보문호는 생각보다 훨씬 조용하고 넓었다. 관광지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띄엄띄엄 흩어져 있어서, 반려견과 천천히 걷기에 참 좋았다. 봄이가 낙엽 위를 지나갈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는데, 그 소리가 왠지 모르게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주차는 호수 주변 공영주차장을 이용했는데, 평일이라 그런지 자리가 넉넉했다. 다만 호수 바로 옆 잔디밭에서는 목줄을 꼭 해야 한다는 안내문이 있었는데, 그래도 산책로 자체가 넓어서 답답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규칙이 명확하니 마음이 놓였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자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기 시작했고, 봄이는 벤치 아래 그늘을 찾아 엎드려 바람을 쐬고 있었다. 호수 건너편으로 보이는 고즈넉한 산 능선이 그림 같았다.
저녁, 강원도로 향하다

사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다. 경주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차를 돌려 강원도로 향했다. 친구가 “강원도에 애견동반으로 정말 잘 되어 있는 펜션이 있는데, 거기 가보지 않겠냐”고 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경주도 좋았지만, ‘강원 애견동반 펜션’이라는 말에 나는 혹할 수밖에 없었다. 봄이가 물을 무서워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멍멍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넓은 마당이 있다는 말에 기대가 부풀었다.
도착한 펜션은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건물 앞에는 생각보다 넓은 잔디 마당이 있었고, 펜션 주인분이 직접 나와서 “우리 집 강아지가 먼저 반겨서 미안하다”며 웃어주셨다. 방 안에는 강아지용 담요와 밥그릇, 물그릇이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이런 사소한 배려가 참 반가웠다. 저녁에 봄이와 마당에 나가 앉아 있자니, 공기가 유난히 맑았다. 별이 쏟아질 듯이 보였다. 봄이는 내 옆에 조용히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내 무릎에 머리를 기대고 잠이 들었다. 낮에 호수에서 뛰어놀았던 녀석이 제법 지쳤나 보다. 그렇게 고요한 밤, 나는 봄이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여행을 온다는 건, 결국 이렇게 일상에서 벗어나 서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일이구나.
아침에 눈을 떠 보니 봄이는 이미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마당에 서리가 내려 앉아 있었는데, 봄이는 그걸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급하게 짐을 싸며 다음 여행지를 궁리했다. 아마도 봄이가 물을 무서워한다는 편견을 깨준 이번 여행처럼, 다음 여행에서도 우리는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 오후, 돌아오는 길에 봄이는 또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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