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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대구 여행은 전혀 예상치 못한 수순이었다. 친구가 급하게 일이 생겨서 예약해둔 펜션을 구제해달라고 전화를 했고, 마침 주말에 딱히 계획이 없던 나는 “그래, 가자” 하고 가방을 챙겼다. 차에 오르자마자 뒷좌석에서 코를 박고 잠든 우리 강아지가 신경 쓰여서, “대구 가는 길인데, 너도 처음 가는 곳이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설악산은 멀지만, 마음은 이미 그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생각났다. 내가 왜 하필 등산 장비를 챙겨왔을까? 대구는 산이 많은 도시지만, 사실 내 머릿속은 온통 설악산이었다. 작년부터 계획만 세우고 미뤄둔 강아지와의 첫 등산. 설악산은 반려견 동반이 제한된 구간이 많아서, 대신 ‘강원도 같은 느낌’을 찾아 대구 근교의 낮은 산을 골랐다. 비슬산 참꽃길이 유명하다기에, 강아지 발바닥에 무리가 덜 가는 흙길이 많다는 후기를 믿고 출발했다.
주차장에 내리니 봄바람이 제법 쌀쌀했다. 강아지는 처음 보는 넓은 풍경에 귀를 쫑긋 세우고, 코를 땅에 대고 열심히 냄새를 맡았다. “등산? 그게 뭐야?” 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물통과 간식을 챙겼다. 리드는 짧게 잡고, 다른 등산객과의 거리를 충분히 두기로 마음먹었다.
흙길 위의 작은 발걸음
비슬산 참꽃길은 생각보다 완만했다. 경사가 급하지 않아서 강아지가 스스로 오르내리기에 딱 좋았다. 처음 10분은 이리저리 냄새를 맡느라 제자리 걸음이었는데, 점차 속도가 붙더니 앞서 걷는 내 발을 따라오기 바빴다. 중간중간 쉬는 벤치가 있어서 나는 간식을 꺼내 보상해줬다. 강아지가 혀를 촉촉하게 내밀고, 눈을 반짝이며 내 손을 바라볼 때, 이렇게 함께하는 시간이 정말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등산객들이 “강아지 귀엽네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대부분 리드를 잘 지키고, 배변봉투를 챙긴 모습이어서 나도 안심이 됐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주차장이 좁아서 주말 오후쯤 되면 차를 대기가 어렵다는 후기를 봤는데, 실제로도 오전 10시를 넘기니 자리가 거의 없었다. 다음에 오려면 아침 일찍 출발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산 정상보다 중요한 것
정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간 전망대에서 잠시 멈춰 대구 시내를 내려다봤다. 강아지는 내 품에 안겨서 바람을 맞았다. 귀가 살짝 날리고, 눈을 가늘게 뜨는 모습이 마치 “여기 괜찮네” 하는 것 같았다. 등산을 마치고 내려와 차 안에서 물을 마시는데, 강아지는 이미 뒷좌석에서 깊게 잠이 들었다. 발바닥을 확인해보니 흙만 묻었을 뿐 상처는 없었다.
대구 여행의 마지막 날, 우리는 근처 카페에서 쉬었다. 강아지가 피곤한지 내 무릎 위에 털썩 주저앉아 꼼짝하지 않았다. 처음 등산을 시도한 날, 나는 이 작은 생명체가 얼마나 단단한지, 얼마나 나와 함께 길을 걸을 수 있는지 알게 됐다. 설악산은 아직 멀었지만, 오늘 이 흙길이 그곳으로 가는 첫걸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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